나는 똥을 배설한다.

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야겠다 결심한 것은 두 달 전이다. 이사 온 집엔 외풍이 들었다. 찬 공기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나는 몇 달 전 그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사랑이 잔인한 이유는 끝이 나서가 아니라 계속 시작되기 때문이구나. 언제든 홀연히 사라질 수 있는 것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또 붙잡고 싶어진다. 나는 그 어떤 미래도 상상하지 않고, 오직 지금...

이 영화에 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결국 그 어떤 표현도 무의미하므로. 한꺼번에 떠오른 것들에 대하여. 양자경이 등장한 순간부터 눈물이 쏟아졌는데, 멈춰지지 않아서 멈추지 않았다. 140분 동안 울어본 적은 처음이어서, 무엇을 본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영화를 본 건가 다른 것을 본 건가.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잔인한 판타지다. 모든 ...

사랑은 구멍이다. 그러니까 나는 구멍을 사랑한다. 사랑이 깊어지면 구멍이 커지고, 구멍이 커지면 결국 텅 비어서 우주가 되고, 우주가 되면 아무것도 모르게 된다.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 없어서 사랑이 된다. 나는 수 십 권의 책을 읽고, 수 백 개의 문제를 풀고, 수 천자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지만, 사랑은 어쩔 줄 모르겠다. 그래서 사...

회사에 다닌 지 어느덧 반년이 되었다. 이 회사는 정말 좋은 곳이다. 친절한 동료들, 자유로운 근무 환경, 넉넉한 월급. 정말 놀라울 정도로 이상적인 회사인데, 나는 이상하게 고장 나버렸다. 책은 안 읽히고, 영화는 안 본다. 글도 안 쓴다. 못 쓴다. 퇴근 후엔 유튜브를 보다가 안 보다가, 쇼핑을 하다가 안 하다가, 채팅을 했다가 안 했다가를 반복한다. ...

선거 다음날이었다. 회사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나에게 대뜸 몇 번을 찍었냐고 물었다. 그는 선거 결과를 보고 울었다며 내게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다. 자신도 사실 한 정치인을 이렇게까지 지지해 보긴 처음이라며, 언젠가 그를 위해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열렬함의 근원이 궁금하여 여러 질문을 던졌다. 그의 답은 며칠 전 한 언론인이 라디오에서 말한 것과...

이미 많이 변했다. 말투와 취향이 조금 변했다. 인간관계는 많이 변했고, 생각은 더 많이 변했다. 내가 요새 신나게 떠드는 이야기들은 몇 년 전의 나는 전혀 모르던 것들이다. 변화가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갈수록 내가 편해진다. 좋아진다. 내가 나를 더 잘 알게되어서가 아니라 나도 나를 결코 완벽히 알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변화무쌍하...

나는 개인주의자다. 모든 인간의 특수함과 유별함을 믿는다는 것이다. 내가 클리셰를 싫어하는 이유는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인간을 무시한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수많은 영상 매체들이 한 인간을 직업으로, 성별로, 나이로 너무 쉽게 뭉뚱그린다. 재벌은 이렇고, 정치인은 저렇다.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저렇다. 10대는 이렇고, 50대는 저렇다. 미디어의 영향인지 ...

회사 로고가 박힌 노란 조끼 차림의 아저씨가 “아프가니스탄도 중앙아시아야,”라고 했다. 술에 취한 직장인들이 힘겹게 막차에 올라탈 때, 아저씨는 지하철 계단에 앉아 느긋하게 통화를 이어갔다. 대체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을까, 상상의 글을 쓰고 싶었다. 어느 날에는 “당신이 무너지는 게 주변 사람들을 위해 더 좋은 일이다”라는 문장을 책인가 영화...

모두가 떠들고 있다. 일상과 생각을 끝없이 공유하고 검증받아 나만의 ‘개성’을 증명한다. 너도나도 자신의 특별함을, 남다름을 내세운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에 대해 외친다. 자신의 남다른 외모와, 취향과, 지식과, 생각을 앞다투어 좌판에 펼친다. “이게 바로 나”라는 흥정이 계속되고, 소음은 커진다. 메아리가 없다. 아무것도 다시 들리지 않는다. 모두 다...

비가 쏟아지던 날, 경복궁역 술집에서 Z를 만났다. 그는 나보다 스무 살쯤 많은 사람인데, 전에 내게 일자리를 주선해 준 적이 있었다. 그 일은 결국 못하게 되었지만, ‘잡종 경력의 이상한 사람’을 뽑는다는 포지션에 불현듯 나를 떠올리고 전화해 준 그에게 무척 감사했었다. 그래서 몇 달 만에 내가 다시 돈을 벌게 되자마자 그에게 연락했다. 어려운 상황에도 ...

맨 뒷자리에 앉아 젖은 바지를 털었다. 갑자기 쏟아진 비에 몸과 마음이 눅눅했다. 신발 냄새가 꿉꿉해 창문을 열었다. 창밖 풍경은 지루했다. 항상 타는 버스였고, 항상 같은 길을 달렸다. 익숙한 사거리가 보였다. 사거리 한편에 위치한 스타벅스에서 Z와 커피를 마셨었다. 나는 Z를 볼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일렁인다. 대학교 졸업 직후, 무기력과 우울로...

가끔 가슴이 뻐근하달까, 하여튼 이상한 울렁거림이 올라올 때가 있다. 컴컴하고 깊은 동굴에 갇혀 절대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에 머리가 핑 돌고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외로움이다. 나는 외로움을 마음이 아닌 몸으로 느낀다. 그리고 이런 순간은 절대 혼자 있을 때 찾아오지 않는다. 친구와 술잔을 나눌 때, 애인을 안고 있을 때, 가족과 밥을 먹을 때—...